부산역과 맞닿은 동네인 초량동은 오래전부터 부산의 관문이었다. 300여 년 전, 조선을 오가던 일본인들은 왕래가 편한 이곳에 왜관을 지어 활동 거점으로 삼았다. 또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외지인들은 부둣가에 정착하여 하나의 마을을 이뤘다. 즉, 개항 이래로 초량은 언제나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는 통로였으며, 동네의 모습은 유입되는 문화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언덕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으며 이곳은 영세한 판자촌으로 변모했다. 또한, 초량을 통하지 않고도 부산,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생겼다. 결국, 부산하던 일상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고, 빠르게 흐르던 세월도 흐름을 멈춘 뒤 그대로 내려앉았다.
초량동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된 동네는 옛 모습을 그대로 지켜낼 수 있었다. 대규모 개발에 따라 비슷한 모습을 보이게 된 여느 동네와 달리, 초량동 곳곳에서는 지나온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산과 맞닿아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녔다. 새롭게 들어선 공간 역시도 그러한 흐름에 발맞춘 것인지 세월의 흔적을 살리기 위해 고심한다. 이처럼 쌓인 세월을 여실히 드러낸 공간들은 빈티지한 매력으로 어르신만 가득하던 조용한 동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산복도로에 자리 잡은 초량1941은 1941년에 지어진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다. 이곳은 일제시대에 세워진 건물의 외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카페로 거듭났다. 세월이 느껴지는 작은 규모의 공간에 라디오, 옛날 전화기 등의 소품이 더해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입구를 지나 만날 수 있는 아담한 마당에 서면 어느 일본식 고택에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든다. 다른 카페와는 달리, 커피보다는 우유 메뉴에 주력한 점 역시도 이색적이다. 초량1941을 시작으로, 이 일대에는 적산가옥처럼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공간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