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할망의 봄밥상
Interview
할망의 봄밥상

할머님은 신풍리에서 나고 자라셨지요.
나가 올해 아흔이난, 이 마을 에서만 90년째 살고 있주게. 결혼도 마을남자랑 허곡 자식들도 몬딱(전부) 이 마을에서 키웠수다.

부엌에서 요리하신지도 오래됐겠어요.
어멍일 도왕 열다섯 살부터 일해시난 오래됐주게. 겅 허당 스무 살쯤 시집오고, 그때부터랑(는) 맨날 부엌일만 해서.

마을이 바다에서 떨어져 있는 편이에요.
기지(그렇지). 겅 행 예전엔 바닷고기 한번 먹기가 잘도 어려워서. 바다에 가잰 허민 마음먹고 나와야 해시난게. 우영팟(텃밭)에 나는 것들로 겨우 허기만 채우멍 살았주. 지금이랑 시장에 강 장도 봠주만 예전엔 시장이라는 것이 어섰지(없었지). 일단, 장 볼 돈이 어디시냐게(어디 있겠니). 그때랑 파는 사람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던 때라. 전부 땅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먹었어.

밭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나요.
밭 빌려당 농사 지었지. 밭 을 딱 반으로 나눠그넹(나눠서) 농작물의 절반은 주인한티 몬딱 주고 남은 절반으로 끼니를 때웠어. 그때랑 농사짓는 게 돈벌잰 헌 게 아니고, 먹기 위해서였주.

식재료가 부족하다보니 요리법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 같아요.
그때 먹던 짐치(김치)는 지금처럼 빨갛지 않았지. 고춧가루는 당연지사, 소금도 참 귀했어. 소금 살 돈이 어서부난 어른아이 할 것 어시(없이) 몬딱 물허벅 져그넹(지고) 바다에 강 바닷물 길어 왔주. 그 바닷물에 배추나 무를 담가놔. 게당(그러다) 몇 시간 지나민 배추랑 무가 노랗 게 변하주게. 게민(그러면) 꺼냉 찬물에 휙 헹궝 흰 짐치를 먹었어.

먹고 싶어도 못 먹던 음식이 참 많았겠어요.
많다 말다. 고랑(말해서) 뭣 헐꺼라. 지금이야 흔히 먹주만 멜젓이나 자리젓도 잘 못 먹었주게. 특히 자리젓은 잘 사는 사람들이나 먹었어. 멜젓은 한 달, 자리젓은 꼬박 두 달이 지나야 먹어지거든. 늘 배가 궁한데 반찬을 두 달이나 기다릴 여력이 없주게.

봄의 우영팟에는 어떤 채소가 자라나요.
봄동도 있고 놈삐(무)도 있지. 시금치도 심어놔신디 올해는 영 시원치가 않은게. 콥대사니(풋마늘)도 심어서. 예전에 딸내미한티 우영팟에 강 대사니 호꼼 심엉오라(가져오라) 하난, 한참 있다 와그넹 "어멍, 대사니가 뭐꽝(뭐예요)?"했던 게 기억남쩌. 대사니가 풋마늘인 줄도 몰랐던 모양이라.

풋마늘도 제주의 대표 봄 식재료지요.
콥대사니(풋마늘)로 장아찌도 담고 무쳥도(무쳐도) 먹곡 허주게. 겐디 겨울에 말린 무말랭이 넣엉 만든 마농지(풋마늘대장아찌)가 제일 맛좋아. 보리밥에 물 말앙 마농지에만 먹어도 맛나다고 좋아했어.

할머님이 좋아하시는 봄 음식 하나를 꼽자면요.
다 맛있주게. 게도(그래도) 봄동 무침이 가장 맛 좋주. 봄동은 살짝 데쳐그넹 된장 놓곡 버무려도 맛있고, 겉절이처럼 호쏠(잠깐) 무쳥 먹어도 맛있지. 여린 봄동잎에 된장이나 멜젓만 올령 밥에 싸먹는 것도 좋지. 봄동이 진짜 돌코롱(달콤)하거든. 검질(김)메고 오멍 냉이나 꿩마농(달래)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햄시민 '아, 봄이 왔구나'하는 거주게. 봄에는 봄나물 따당(따서) 무쳥 먹는 게 제일이라.

저는 식탁 위에서 유채나물을 만날 때 봄이 왔음을 실감해요.
유채랑 초봄에 돋아나는 여린 잎으로 무쳐야 맛 좋아. 이맘때는 유채가 억세부난 맛이 덜하주게. 방금 무친 유채도 잘도 억세신디 맛 좋으큰지 모르켜(웃음).

금세 봄나물 무침을 뚝딱 만들어주셨는데 무척 맛났어요.
가축도 키우긴 했지. 닭도 키우고 통시(화장실)에는 돼지도 있어시난. 병아리를 마당에 풀어놓으민 독수리가 지나가당 물엉 가고 겅해서. 게난 병아리도 우리에 가뒁 꼭꼭 곱져놨주게.

봄나물도 좋지만 육류나 어류는 어떻게 드셨는지 궁금해요.
가축도 키우긴 했지. 닭도 키우고 통시(화장실)에는 돼지도 있어시난. 병아리를 마당에 풀어놓으민 독수리가 지나가당 물엉 가고 겅해서. 게난 병아리도 우리에 가뒁 꼭꼭 곱져놨주게.

통시(화장실)에서 키우는 돼지로 고기반찬을 해결하셨군요.
아이고, 겅 귀한 걸 그냥 먹어불면 어떵허나(웃음). 그때는 고기 못 먹어도 잘만 살았쪄. 영(이렇게) 고기반찬 먹으멍 산 지도 얼마 안돼서. 굶지만 않으면 다행이었주. 통시에서 키우는 도새기는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 잡앙 먹거나, 팔아서 돈으로 바꿨어.

자식들이 가장 좋아하던 할머님의 봄 음식이 궁금해요.
무시거(어떤 것) 좋아해실건고... 봄 되민 쑥 캐당 국도 끓영 먹고 떡도 행 먹어신디 쑥떡을 좋아했던 거 닮다. 쑥을 삶고 빠슨(빻은) 다음에 밀가루를 넣곡 행 쪄내신디 아이들이 잘 먹어서.

혹시 할머님 부엌에 보물이 있나요?
보물이랄 게 어신디... 결혼할 때 가져왔던 오래된 그릇 닮은 게 있어신디 다 남 줘부렀주게. 늙은 할망이 그런 거 갖고 이성(있어서) 뭣허나. 이제는 딸이나 며느리가 사다준 그릇들이 보물이라.

 

2017, Spring
p 096 ~ 102
유주연 / 사진 김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