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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은 벌써 지나 새벽으로 가는데
아 내 마음 가져간 사람 신사동 그 사람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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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신사동 그사람>
1980년대를 휩쓸었던 트로트 가수 주현미는 그녀의 히트곡 <신사동 그 사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강남이 <제3한강교>, <사랑의 거리>, <영동 부르스> 등 수많은 7080 대중가요 속 사랑과 이별의 배경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역 뒷골목 ⓒYoshi
1970년대 초반까지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곳은 다방과 술집이 모여 있던 종로와 명동 일대였다. 그러나 1972년, 서울시가 강북 도심을 대상으로 유흥 시설 규제를 선언하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해당 업주들은 규제를 피해 당시 떠오르던 기회의 땅, 강남으로 대거 자리를 옮겼다. 신사동을 중심으로 나이트클럽과 바, 카바레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강남은 70, 80년대 새로운 유흥가로 급부상했다. 강남역 인근의 디스코텍 ‘스튜디오80’과 잠원동의 ‘물 나이트클럽’ 등 서울 밤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들 또한 이 시기에 생겨났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고층 빌딩이 주는 도시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이곳을 찾은 젊은 남녀들은 불장난 같은 사랑을 이어갔고, 이것이 당시 대중가요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시간이 흘러 각종 유흥업소가 있던 자리를 세련된 편집숍과 카페가 채우면서, 한때 강남 최고의 유흥가로 불렸던 신사동은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동네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러나 강남역 인근 초고층 빌딩 뒤에 자리 잡은 좁은 골목에서는 여전히 80년대 유흥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전의 향락적 분위기는 사그라들었지만, 한국의 화려한 음주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