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이었던 강남이 정부 주도하에 개발되기 시작했던 1960년대 후반. 본격적인 개발 전, 무엇보다 부지 확보가 필요했던 정부는 오랜 시간 강남에 자리해 있던 봉은사와 선정릉에 손을 내밀었다.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을 합쳐 부르는 것으로,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 그리고 아들 중종의 능을 말한다.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시절에 ‘견성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가, 조선 시대에 성종의 능(선릉)을 지키는 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다. 이 사찰은 1960년대 후반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며 강남의 많은 부지를 소유했고, 그 규모가 오늘날의 한전, 코엑스 일부, 경기고등학교 부지까지 이른다고 알려진다. 개발 부지가 필요했던 정부는 이 부지의 매각을 요청했다. 당시 불교회관 건립과 동국대학교 건물(현재 동국대 학술관) 매입을 위하여 자금이 필요했던 봉은사는 결국, 주변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약 10만 평의 땅을 5억 3천만 원에 넘긴다. 삼성동 꼭대기에서부터 지금의 테헤란로를 따라 능선을 이루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선정릉 또한, 개발로 인해 점점 영역이 축소된다.
좌:도심 속 봉은사 / 우:선정릉
이로 인해 강남에서는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조선 시대의 능과 거대한 코엑스 옆에 자리한 신라시대의 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강남의 급격한 변화에 일조한 동시에 과거를 보존한 존재로 도심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